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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18 쿤둔 (2)
- 2008/11/18 티벳에서의 7년 절대적 순수와 외로움 (2)
- 2008/10/22 60일간의 인도여행 맥그로드간즈 티벳망명정부 네쭝사원 (2)
- 2008/10/19 60일간의 인도여행 맥그로드간즈, 티벳 그날이 오길 바라며..
- 2008/10/19 60일간의 인도여행 - 맥그로드간즈, 좋아하던 길들
- 2008/09/29 60일간의 인도여행 - 맥그로드간즈, 다시 가고 싶은 그곳 (3)
맥간을 떠나기로 결정한날 아침 티벳박물관과 남걀사원에 다녀왔다.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박물관에서, 사진을 몇장찍었지만, 올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생략하겠다. 위에 보이는 것은 후원한 이들의 명패인듯 싶다.
그들의 역사와 삶, 중국에게 당한 침략, 그리고 탈출에 대한 것들을 볼수 있었다.
티벳은 박물관에 기록되어져 있었다.
중국의 자치구가 아닌, 하나의 나라인 티벳.
피로 얼룩진 전시물과 히말라야를 넘던 그들의 기록을 보며
지금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갈 그날이 오길 기원했다.
남걀사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원 입구에서 검문이 이루어졌는데, 그때는 잘 모르고 귀찮아하며 투덜거렸다.
생각해보니 북경올림픽 이전이라 경비가 엄격해졌던 것일지도
사원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남걀사원의 마니차. 건물 둘레를 감싸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인도여행을 하며 본 것 중 가장 예뻤다.
어흥은 금색을 참 좋아한다. 어쩌면 황금집착주의자일지도 -_-;;
마니차는 경전을 새겨 놓은 통으로, 사람들은 손으로 경전통을 돌리며 그 주변을 걷는다.
검색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마니차를 한번 돌릴때마다 경전을 한번 읽는다고 여긴단다.
여행을 하며 다양한 마니차를 여러번 돌렸는데 말이지..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에도 자꾸만 티벳에 신경이 집중된다, 이게 마니차의 효과인 것인가?
남걀사원을 나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티벳스님들의 옷색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북인도 어디에서든 티벳스님들은 눈에 잘 띄었다.
선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 만큼은 나도 함께 선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님이라고 해서 위엄을 가지고 있거나, 다가갈수 없는 모습이 아니었다. 나이드신 스님은 동네 할아버지 처럼, 어린스님들은 공부하는 학생 처럼 느껴졌는데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거나, 길에서 신발을 사고 음식을 사먹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등등. 일반인처럼 지내는 모습이었다.
스님들이 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맥간 들어간 첫날 아침, 만났던 스님때문이 아닐까?
길을 몰라서 헤메고 있던 우리에게 지프스탠드 위치를 알려주며, 9루피 이상은 주지 말라고 하셨지.
맥간에는 한국 사람이 많다며, 스님은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고,
앞으로 내 여행은 즐거울 것이라고 말하며
길안내를 부탁했지만 지금은 다른곳에 가봐야 한다며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맥간 어디에서나 다시 볼수 있을꺼라고 (결국 다시 볼순 없었지만) 말씀하셨던 분.
그 한분 덕분에 같은 옷을 입은 다른 스님들 역시 그분과 같은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이겠지.
티벳에서의 7년을 보고 탄력받아서 함께 보게 된 쿤둔.
달라이라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처음에는 감언이설로 자신의 어머니도 불자였다며 달라이라마에게 호의를 보이더니 마침내는
종교가 독이라고 외치던 마오쩌뚱, 곳곳에 크게 걸린 영화속 그의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본인 자신이 신이 되길 원했던 것이겠지.
왜 티벳이 인도로 갈수 밖에 없었나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된 영화.
낙후된 티벳을 개혁하겠다는 중국의 뻔한 거짓말의 결과는 티벳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이 땅을 떠날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귀여웠던 아이에서, 호기심 많은 소년에서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란 달라이라마.
영화 후반부에서 달라이라마는 거의 대사가 없다. 침묵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성인이된 달라이라마를 연기하는 주인공의 표정느낌이 슬프고도 아련하게 다가왔다.
영상은 달라이라마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반짝광을 낸 군인들의 구두와 그들의 툭 불거져나온 배.
티벳에서의 7년과 마찬가지로 쿤둔 속에서 달라이라마는 외롭게만 느껴졌다.
달라이라마에게 축복을, 티벳에게 축복을,
선은 흥하고 악은 망하리라, FREE TIBET.
사족하나. 좀더 많은 감독들이 티벳에 관한 영화를 보여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달라이라마가 아닌 보통의 티벳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부산영화제때 상영되었던 것을 뒤늦게 알았는데 아쉽기 그지 없다. 하긴 돈이 안되니까 거들떠 안보려나..
사족두울. 검색하다 발견했는데 티벳선교활동하는 기독교 까페가 있더라, 미친놈들. 개독이라 까이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일요일에 티벳에서의 7년과 쿤둔을 보았다.
티벳관련 검색을 하다가, 티벳에서의 7년이란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 관련 검색을 하다 쿤둔이라는 영화를 찾았다.
티벳에서의 7년에는 젊은 시절 브래드피트가 나온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보기로 했다. 하핫.
티벳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는 나는,
단지 2주동안 티벳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맥간에 머물렀을 뿐이다.
산악인이었던 하인리히는 여차저차한사정으로..
(사정을 쓰려니 너무 길다, 본인은 그걸 말하고 싶은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수용소에서 함께 탈출한 동료와 함께 티벳에 머물게 된다.
둘은 고국으로도, 네팔로도, 인도로도 갈 수가 없었다.
티벳 이외의 다른곳으로 갈 수 있는 선택의 여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달라이라마를 만나게 되고 함께 지내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세계 2차대전은 끝이난다. 중국의 침략으로 달라이라마는 거처를 옮겨야만 하고,
두고온 이이에 대한 그리움을 버릴 수 없던 하인리히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달라이라마가 선물한 오르골을 7년동안 만나지 못한 어린아들에게 전해주고,
시간이 흐른후 주인공과 성장한 그의 아들은 함께 산을 오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달라이라마와 하인리히의 공통점은 순수와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산에 오를 때의 순간, 그 순수가 좋다고 말하던 주인공, 종교에 대한 절대적 순수를 가진 달라이라마.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어린시절부터 혼자 일수 밖에 없었던 달라이라마
낭가파르바트 등정을 위해 고국을 떠난 이후 언제나 외로웠던 하인리히.
순수와 외로움을 공집합으로 가진 두사람의 우정.
그래서 그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교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게스트하우스에서 한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티벳망명정부에 도착했다.
중국 베이징 올림픽 이전이라, 맥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현수막이다. 망명정부 안에도 걸려있더라,
celebration of human rights violation
...
귀여워서 다가 갔는데 양인지 염소인지 모르겠더라..
뒤에 있는 갈색녀석은 지금사진으로 보니 개처럼 보이기도 하네 ㅋㅋ
축 늘어진 귀가 포인트!
FREE TIBET.
망명 정부의 중심이다. 작은 건물 몇개에 여러개의 부처가 나뉘어 있었다.
우리의 망명정부도.. 그랬겠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망명정부는 더 초라했겠다.
티벳사람들은 맥간에 정착한지 시간이 꽤 흘렀고, 관광객이 있어 수입을 올릴 수 있을테니..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이라서 모두 문을 닫았다. 도서관에 가보고 싶었었는데..
망명정부안에 있는 사원이다. 그때는 뭣모르고 들어갔는데, 포스트 작성하려고 검색하니
네쭝사원이란다. 이곳에서 국가의 신탁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이사진 마음에 든다.
티벳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사진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어둠속에 있는 그들, 문밖의 빛, 빛속의 바깥 세계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바람
그들도 바람을 느끼고 있겠지.
언젠가 빛은 꼭 들어오리라.
참, 어흥은 똑딱이 캐논 850IS로 여행을 했다. 내사진은 거의 오토모드로 놓고 찍었다. 오토인생 ㅋㅋ
출발전 카메라도 살까 했지만 더지르다간 파산신이 내려올지도 모르는 관계로 참고 또 참았다.
인도에 가져가는 짐은 전생의 업의 무게라는 말을 얼핏 들어 덕분에 잘 참을 수 있었다.
에쎄랄 카메라를 가져갔으면 2달 있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ㅎㅎ
티베트(TIBET)
티베트(티베트어: བོད 보드, 중국어: 西藏 시짱[*])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고원 지역으로, 토착 티베트인들의 고향이다. 평균 고도는 약 4,900m이며, 지구상의 육지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티베트는 현재 중국의 일부(시짱 자치구; 西藏自治區)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일부가 인도에 포함되기도 하며, 대만에서는 공식적인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기도 한다. 티베트의 주권과 관련하여,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티베트 망명 정부는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가 된 시기와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된 것이 국제법상 효력이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이견이 있다.
맥그로드간즈
다람살라(Dharamsala) 시는 산 아래쪽(Lower Dharamsala)과 산 위쪽(Upper Dharamsala)으로 구분하는데, 맥그로드 간즈는 다람살라 시의 산 위쪽에 위치한다. 맥그로드 간즈는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의 망명 정부가 들어서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표고 1,800미터에 위치하며 인도에서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마을이다. 맥그로드 간즈는 1950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침공 때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망명해 온 티베트 난민들이 정착한 곳으로, 6000여 명의 티베트 인들이 모여 독자의 티베트 문화를 이루고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도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데, 해외 체재 중일 때를 제외하고는 누구나가 간단한 절차를 거쳐 알현할 수 있다. 시내에는 티베트 망명 정부의 행정부와 티베트 도서관, 달라이 라마를 따르는 3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남걀 사원 등이 있다.
[위키백과검색]
주말오후 몇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주 토요일이었던가
맥그로드간즈의 티벳탄들은 상점을 모두 닫고 거리로 나와 촛불시위를 한다.
열려있는 상점들은 인도인의 소유이다.
시위라고 이름을 붙이니 뭔가 이상해보인다. 그들은 단지 촛불을 들고 거리를 따라 걷는다.
그들의 땅이 다시 그들의 것으로 돌아갈 그날을 기원하며. 스님과 사람들은 묵묵히 길을 걸어간다.
그네들의 모습에서 1900년대 우리나라의 일제점령기를 떠올릴 수 있다.
3월 티벳사태에도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고 한다. 기사로 발표되어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은 일부분일 뿐이라고 말하던 티벳탄이 생각난다. 자기의 집은 라싸인데, 티벳 사태이후 맥간으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가족들은 아직 라싸에 남아있다고, 친구와 가족이 걱정된다고 했던 그.
인도여행이 끝나갈 즈음 다시 찾은 맥간에서 만난 티벳탄 친구는 자기는 3세대라고 했다.
맥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조국땅에 대한 기억이 없다.
자기는 잘 모르겠다며, 사람들이 죽는 것도 싫고, 그냥 돈을 벌어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노점에서 씨디를 파는 그는 나를 만난 다음날 친구가 있는 마날리로 간다고 했다.
인도에 살고 있지만 인도인이 아닌 그들,
세대가 바뀔 수록 그들의 땅은 점점 잊혀져 갈지도 모른다.
안타깝다.
티벳탄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들의 나라를 되찾는 그날이 오길,
바라고 또 바란다.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을 준비했지만 난 혼자가 아니었다.
여행준비를 하며 알게 된 인터넷까페 인도방랑기에서 만난 인연들이 있었고,
발걸음 닫는 길마다 만나는 친구가 있었다.
원래 자이살메르로 가려고 했지만
인도 현지 날씨가 너무 더워 시원한 쪽으로 가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였다.
나도 이렇게 더울줄은 몰랐었다.
46도 이상의 찜질방 속 거리를 걷다보면..
아 시원한데로 가고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맥그로드간즈.
여행준비를 하며 가고 싶은 곳 2순위였던 곳인데
3월에 티벳사태가 일어나면서 리스트에서 빼놓았던 곳이다.
지금은 괜찮다고, 5월에 다녀온 사람도 많았다.
위사진은 맥그로드간즈 버스스탠드앞인데, 에스케이텔레콤 로밍은 다람살라라고 나오더라,
맥간은 델리에서 버스로 10시간쯤 거리에 있다.
맥간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고, 좋아한단다.
그래서 그랬을까? 난 첫발을 딛는 순간 부터 그곳이 좋았다.
버스스탠드에서 만난 친절한 스님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지프스탠드있는 곳을 알려주고, 9루피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며 당부를 했다.
맥그로드간즈에는 이곳에 한국 학생들이 많다며,
너도 수업 받으러 왔냐고 물으시던 스님.
맥그로드간즈는 함께한 이들이 좋았고,티벳사람들이 좋았다.
인도여행 막바지에 맥간에 한번 더 찾아갔었다.
그곳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인도여행의 베스트를 꼽으라면 난 당연히 맥그로드 간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