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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10 톱 연주를 듣는 밤, 황병승 (2)
타오르는 촛불 아래서 나는 약혼자에게 편지를 쓰다말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카프카가 되었습니다
쭉정이 같은 모습으로 늙어갔을 사내 그러나 그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재능 있고 병들고 고단한 사내입니다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면 마음에 작고 따듯한 구멍이 생겨
톱 연주를 듣는 밤은 나의 초라한 모양이 싫지가 않습니다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작년 가을에는 꿈속에서 일곱명의 남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경찰에 쫓기는 몸이지만 사랑하는 약혼자와 노모 때문
에 자수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꿈을 자주 꿉니다
사람들에게 변신을 내가 썼다고 말했습니다
안개와 어둠뿐인 성 주 변을 맴돌며 오늘도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
(누가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왜 아무도 나를 이곳에서 끌어내지 못합
니까)
어머니는 민들레 잎을 먹으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라 말하지만
외할머니도 위암으로 죽었고 어머니도 위암으로 죽어가고 나 역시 배를
움켜쥐고 죽게 될 것입니다
약혼자는 건강한 여성이어서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겠지요
사랑하는 나의 피앙세, 그녀는 꿈에도 내가 카프카라는 사실을 모
르겠지만
그녀와 내가 백발이 되도록 함께 심판을 받을 수만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내가 그녀의 여덟 번째 약혼자라는 사실도 내가 그녀의 마지막 남
자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적인 충고도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오래도록 숨을 참고 있으면 마음에 작은 구멍이 닫히고
나는 카프카도 그 어떤 누구도 아닌, 죽어가는 노모와 단 둘 뿐인
텅 빈 박제에 불과하지만
삶이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뻔뻔하게도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그녀를 사랑해왔고
두 번 다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다시 무덤 속에서도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사슴처럼 뛰어다니는 그녀의 활기찬 육체는 어떻습니까
가죽을 벗겨서라도 그것을 가지겠습니다
독자들이여
이 모든 집착과 거짓을 누가 멈출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밤은 그 어느 누구도 욕할 수 없어 나는 밟아도 꿈틀거리고
끊어져도 꿈틀거리고 죽어서도 꿈틀거리는 위대한 사내가 되어
변신을 내가 썼다고 말했습니다
성주변을 맴돌며 언제까지라도 심판을 기다리겠다고……
누가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때가 되면 모든 안개와 어둠이 걷힐
거라고 어머니는 말하지만
외할머니도 민들레 잎을 먹으며 죽어갔고 어머니도 민들레 잎을
먹으며 죽어가고 나 역시 민들레 잎에 몸서리치며 죽게 될 것입니다
약혼자는 겁이 많은 여성이어서 내가 보낸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두려움에 떨고 있겠지요
참었던 숨을 길게 내쉬면 마음에 작은 구멍이 열리고
톱연주를 듣는 밤은 어둡고 추한 나의 모습이 싫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