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8/11/03 위험한 家系
  2. 2008/11/03 질투는 나의 힘
  3. 2008/11/03 흔해빠진 독서
  4. 2008/11/03 빈집
  5. 2008/11/03 엄마 걱정
  6. 2008/10/25 기형도 쥐불놀이 ---겨울 版畵5
  7. 2008/10/25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2)
2008/11/03 01:38

1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
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
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댄 채 큰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우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풍병(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매셨다.


2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
요. 나는 사료를 한 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
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
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 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 봄에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
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예요. 어머
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3
방죽에서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가을 밤의 어둠 속에서
큰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
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츄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
까.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
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 소리를 냈다. 츄리닝이 문제겠니. 내
년 봄엔 너도 야간고등학교라도 가야 한다. 어머니. 콩나물
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뎅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누
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
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
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
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
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였댔었다. 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
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예요.


4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
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어요? 뿌리가 질
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티밥 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
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저렇게 오므
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


5
선생님. 가정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
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
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
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
시니. 누이의 몸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
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 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
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
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
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
았다.


6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시고 굳은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
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
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그
러나 썰매를 타다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
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
들을 꺼지지 않았다.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 속에서 해
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
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보세요 어
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家系
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위험한 家系·1969 -기형도-

Posted by 어흥:)
2008/11/03 01:34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2005.01.25

Posted by 어흥:)
2008/11/03 01:32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 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손가락들은 까닭 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뿐, 그 누가 나를 빌려가겠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을 저 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휴일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러면 종종 묻고 싶어진다, 내 무시무시한 생애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위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달라고


흔해빠진 독서 -기형도-

2004.10.28

Posted by 어흥:)
2008/11/03 01:29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 기형도-

2004.11.18


Posted by 어흥:)
2008/11/03 01:26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걱정 -기형도-





Posted by 어흥:)
2008/10/25 15:24


어른이 돌려도 됩니까?
돌려도 됩니까 어른이?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대보름의 달이여
올해에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불 속에 숨어 있는걸요?
돌리세요, 나뭇가지
사이에 숨은 꿩을 위해
돌리세요, 술래
는 잠을 자고 있어요
헛간 마른 짚 속에서
대보름의 달이여
온 동네를 뒤지고도 또
어디까지?

아저씨는 불이 무섭지 않으셔요?


쥐불놀이 ---겨울 版畵5
-기형도-



200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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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목발질 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이부분에 목이 콱 막혔었지,

돌려도 됩니까 어른이?
어른이 돌려도 됩니까?
사랑에 자신없어 하는 시인의 모습이 
그때의 나와 비슷했었어. 공감이랄까.
연애라, 시인은 그 누군가를 잘 찾았을까?





참고로
아가씨는 불이 무서워요 
오늘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Posted by 어흥:)
2008/10/25 14:56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그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200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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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를 처음 알게 된 시, 2004년경의 어느날 퇴근후 언제나 그렇듯 영풍문고로 넘어가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한국시 코너에서 처음 발견했다.

입속의 검은 잎,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책과 영화를 고를때 제목에 집착한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그냥 주저 않고 선택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좋았던 경우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헌데 기형도의 경우 굉장히 성공한 경우이고, 이런 숨겨진 발견의 기쁨 때문에 제목에 대한 집착은 오늘도 여전한가보다.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은, 내가 아는 시들의 모습과 다른 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입과 잎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것과  시자체의 분위기.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 느낄 수 있었지만 정확하게는 몰랐다. 시가 518을 배경으로 한 것인지는 검색으로 알았고, 2004년 나는 시에서 나오는 '그'를 박정희로 해석을 했다.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지금도 맞는지 틀렸는지 잘은 모른다. 나는 국어와 문학을 전공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 국어와 문학에 대한 공부는 고등학교 이후 졸업을 한 상태이다. 
시를 접했을 무렵 간혹 들려 수다를 떨던 세이클럽 문학채널에서는 기형도가 죽었기 때문에 유명해졌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아해들이 있었다. 내가 기형도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난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랐다. 얼마전에는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아해도 간혹 있더라.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라. 처음 기형도를 발견했을때 그는 한국시 한켠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기형도가 어둡기만 하다는 말은
하루중 낮과 밤중에 밤이 없다고,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 그림자가 없다고?
라는 말과 같다고 본다. 

기형도는 입속의 검은 잎 외에도 좋은시가 많다.
그가 천재인지 아닌지,자살을 했느니 마느니, 씨니컬이 전부니 하면서
기형도 까지마라,

네가 누구던,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시에 관심을 갖게 한적이 있었나?



...



Posted by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