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때때'에 해당되는 글 3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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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23 히스테리아 -김이듬-
- 2011/12/20 시체가 되다 -김행숙-
- 2011/12/20 당신과 당신 -김행숙-
- 2011/10/29 호르몬그래피 -김행숙-
- 2011/07/08 망각은 없다 - 진은영 -
- 2011/07/08 사람들은 아파트의 어디에 큰 개를 기르는가 - 이원 -
- 2011/07/04 내 워크맨 속 갠지스
- 2011/02/26 쓸쓸해서 머나먼
- 2010/11/25 프란츠 카프카 -오규원-
- 2010/09/29 한 남자가 간다 - 이원 -
- 2010/09/28 검고 불룩한 TV와 나 -이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중
- 2010/09/28 다섯 살을 떠나며 -김행숙- 이별의 능력 중
- 2010/07/05 경이로움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 2010/06/10 톱 연주를 듣는 밤, 황병승 (2)
- 2010/04/26 축복의 시 -보르헤스-
- 2010/01/19 이타카
- 2009/10/20 시학 - 보르헤스
- 2009/03/31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오, 사랑 (2)
- 2008/12/21 끝과 시작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 만져 야야 손 저리 치워 곧 나는 찢어진다 찢어질
것 같다 발작하며 울부짖으려다 손으로 아랫배를 꽉 누른다 심호흡
한다 만지지 마 제발 기대지 말라고 신경질 나게 왜 이래 팽팽해진 가
죽을 찢고 여우든 늑대든 튀어나오려고 한다 피가 흐르는데 핏자국
이 달무리처럼 푸른 시트로 번져가는데 본능이라니 보름달 때문이라
니 조용히 해라 진리를 말하는 자여 진리를 알거든 너만 알고 있어라
더러운 인간들의 복음 주기적인 출혈과 복통 나는 멈추지 않는데 복
잡해죽겠는데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간들 나는 말이야 인싸이
더잖아 아웃싸이더가 아냐 넌 자면서도 중얼거리네 갑작스런 출혈인
데 피 흐르는데 반복적으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큰 문이 달린 세계 이
동하다 반복적으로 멈추는 바퀴 바뀌지 않는 노선 벗어나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대형 생리대가 필요해요 곯아떨어진 이 인간을 어떻게
하나 내 외투 안으로 손을 넣고 갈겨쓴 편지를 읽듯 잠꼬대까지 하는
이 죽일놈을 한방 갈기고 싶은데 이놈의 애인을 어떻게 하나 덥석 목
덜미를 물고 뛰어내릴 수 있다면 갈기를 휘날리며 한밤의 철도 위를
내달릴 수 있다면 달이 뜬 붉은 해안으로 그 흐르는 모래사장 시원한
우물 옆으로 가서 너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나는 누구를 책망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누구의 뒷모습을 가리킬 것인가, 말 것인가. 몇몇 얼굴들이 떠오른다. 얼굴은 얼굴을 부른다. 은희는 정희의 언니가 아니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소년탐정 김전일 왈, 살해당한 사람은 스스로 범인을 지목하지. 범죄의 재구성은 김전일의 창작노트다. 나는 시체 B, 나를 바라보는 김전일은 이마에 주름을 만든다. 시체들은 마지막 표정을 검은 항아리의 문양처럼 소장한다. 추리는 달빛같이 은은하게 시작된다. 김전일은 다음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곧 여름방학이다. 은희는 정희의 언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앉은듯이, 나는 깊숙이 패어 있다. 더러운 피는 깨끗해지지 않고 심장은 더 이상 나의 음악이 아니다. 나는 다른 온도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의문의 연속. 너의 손에 쥐어진 엉뚱한 열쇠. 열쇠를 바꿀 수 없다면 문을 바꿔라. 오우케이? 나는 아무 데서 멈추었다.
시체의 감정은 얼굴 표면에 구겨지거나 펴지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시체는 말이 없다.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오늘은 시체가 된 이후 두번째 보름달이 뜬 날이다. 달빛. 달빛.
너희들은 커플링 같구나
나는 당신을 끼고
당신은 당신을 끼고
비스듬한 오후에는 다같이 비스듬하게
정면으로 오는 차는 정면으로 충돌하고
연인들의 짧은 이름은 폭죽
대낮을 배경으로
내가 아는 연인들의 가장 긴 이름은 일주일 후에 시작된다
나의 에세이에는 주제가 없고
나에겐 이름이 없다
없는 것들의 목록을 당신과 당신이
당신과 당신을 우르르 탕탕 노래하고
저 난동을 어린이집처럼 지켜보는구나
조용해진 당신과 당신은 W와 w
사이사이에 모가지 없이 서 있구나
나는 당신을 당기고
당신은 당신을 당기고
우리들은 나누어 가진다, 천진하게
당신과 당신은 공연에 참여한다
거짓말을 할 때도 천진하게
당신에게 젖줄을 대고 흘러온 저는 소양강 낙동강입니다. 노 없는 뱃사공입니다. 어느 곳에 닿아도 당신이 남자로서 부르면 저는 남자로서
당신이 여자로서 부르면 저는 여자로서 몰입하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세번째, 네번째, 일곱번째 사다리에서 거지가 될 때까지 카드를 만지겠습니다. 녹초가 되게 하세요. 호르몬이여,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눈꺼풀을 내리시고
제 꿈을 휘저으세요. 당신의 영화관이 되겠습니다. 검은 스크린이 될 때까지 호르몬이여, 저 높은 파도로 풍경과 표정을 섞으세요. 전쟁같이 무의미에 도달하도록
신성한 호르몬의 샘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신호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망각은 없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증오하던 이가 죽었다
그는 다시 태어나 내 몸이 되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이가 죽어
그는 강이 되었다
그는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부드러운 머릿결이
모든 계절에 과일과 별의 향기를 뿌리며 네 개의 강으로
지나갔다
어린 시절 읽었던 천일야화 속에서 어느 왕국의 사람들은
모두 물고기가 되었다
그들은 물을 따라 허락 없이 흘러 다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강을 제일 증오하던 왕이 있었다
그는 죽었다
태어나 정치가가 되었다
세상에서 강을 제일 증오하던 왕이 있었다
나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
그를 정치가로 만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
거기는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꿀, 나의 담즙, 나의 거기
어린시절 천일야화 속에서 어느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물고기가 되었다 강은 죽었다가
곧 태어나 내 몸이 되어 올 것이다
신비한 질병과 미지의 악취를 릴레이 주자의 날쌘 팔다리처럼
달고서
어떤 시절에 어느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물고기였다 한때 그들은 제 생각을 따라
텅 빈 광장으로 물처럼 흘러갔다
사람들은 아파트의 어디에
큰 개를 기르는가
사람들이 큰 개를 끌고 나온다 사람들은
아파트의 어디에 큰 개를 기르는가 허공
에게 아파트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큰 나
무의 꼭대기와 나란하게 떠 있는 곳에서
개들은 개들의 표정을 어디에 숨겨두는
가 투신의 표정이 붐비는 아파트의 풀밭
은 무성하다 수백 개의 서랍이 꿈틀거리
는 몸뚱이를 보았다니까요 밖으로 열리
는데 밖에서 잠기기도 한다니까요 길들
여진다는 것은 목소리가 없어진다는 것
항상 같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은 열린
다는 것 개들은 가지런하고 윤기 나는
털들과 같은 한 가지 표정을 가진다 목
소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여전히 목소리
가 나오는 줄 알고 턱관절을 움직이는
것 먹을 것만 내밀면 침을 질질 흘리는
것 아파트가 한 자세로 있을 수 있는 것
은 허공이 자세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개들이 공원의 풀밭을 걷는다 네 다리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이힐 포즈는 아
파트가 가르쳐주었죠 개들은 관대하고
관능적이다 개들의 항문을 졸졸졸 사람
들이 따라간다 뾰족뾰족 잘린 발가락이
수도 없이 펼쳐진 풀밭 뼈에서 살만 바
르듯이 바람이 오른쪽으로 훑는다 입을
크게 벌리며 흰 개가 달리기 시작한다
똑같은 포즈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누
런 개를 향해 가지런한 털 밑에 숨겨두
었던 표정들이 솟아오른다 목소리가 없
어진 줄 모르는 개들에게 끌려 목소리가
없어지지 않은 줄 아는 사람들이 달린다
마주 선 개는 입을 점점 크게 벌리면서
서로에게 달라붙으려 한다 애타게 짖는
데 짖는 시늉이 된다 더 크게 짖어라 얼
굴이 밖으로 흘러넘치도록 볼륨은 이미
0에 맞춰져 있다
목줄을 잡아챈 사람들이 큰 개를 끌고
보도블록을 지나 아파트로 돌아온다 길
들여진다는 것은 금방 다시 관대해지는
것 보도블록을 걸으며 개들은 뼈를 털
속으로 정돈한다 보도블록은 왜 자꾸 교
체되는가 보도블록의 무늬는 어디까지
반복되는가 큰 개도 보도블록도 신호등
도 말이 없다 목소리는 어떻게 말을 만
들어낼 수 있나요 아파트는 허공의 목소
리가 만들어낸 허공의 가설이어서 앨리
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개와 사람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불빛을 쌓아올린다 쌓
는 순간 무너질 운명을 새로 가지게 된
단다 그래도 목소리는 어떻게 말을 만들
어낼 수 있나요 허공은 관대하고 관능적
이다 목소리가 제거된 개들은 허공에서
배운다 머리를 치켜세우고 목을 쭉 뽑고
울지 말아라 교양인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 법이란다 교양견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법이란다 눈부시게 추락하는 꽃들
저것이 꽃나무의 목소리다
내 워크맨 속 갠지스 -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
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
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
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 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길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거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
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
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
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
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스를 감고 돌리고 창틈
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
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못한 꿈 냄새가 도시
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
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몸의 이역(異域)들
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MENU-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르 12000원
이하브 핫산 120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아쥐고 걸어간다 비닐봉지는 내내 마르지 않을 슬픔
처럼 남자의 발 근처까지 죽 늘어진다 비닐봉지의 숨
통을 말아쥔 손은 부드럽다 단호하다 무엇이 숨통을
조이는지 남자 위의 어둑어둑해지는 허공에도 오래된
입가처럼 주름이 진다 주름 속이 가파르다 격렬하다
안이 보이지 않는 비닐봉지가 어둠에서 어둠으로 흔들
린다 시계추처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금
만 텅 빈다 남자는 흔들리는 허공에서 흔들리는 허공
으로 걸어간다 서서히 숨통이 조여가는 남자는 그림자
를 성의처럼 길게 끌고 소란한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오른발과 왼발을 꼬박꼬박 번갈아 내디딘다 불빛이
남자의 그림자 끝을 밟는다 비닐봉지와 바닥 사이의
좁은 틈에서 소음과 음악이 터진 창자처럼 뒤섞인다
남자는 여전히 썩지 않는 비닐봉지를 쥐고 걸어간다
무엇이 손을 고쳐 쥐고 있는지 공기들이 일제히 제 살
을 새 모양으로 깎는다 몸 밖에 발자국을 찍은 적이 없
었던 남자의 발이 들어 올렸던 길을 갑자기 툭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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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이면 대문 앞에 서서 검은 비닐봉지를 든 아버지를 기다렸었어.
1
1990년산 TV와
1968년산 나는 어둠 속에 있다
(낙타와 시간은 사막에 그냥 두고 왔다)
달빛이 흐릿하게 묻은
1990년산 TV와
1968년산 내 몸은 검고 불룩하다
1968년산 나는 쭈구리고 앉아
1990년산 TV를 영혼처럼 들여다본다
2
1990년산 TV와 1968년산 나. 생산년도가 있는 것들.
제품번호가 붙여진 것들. 뜨거운 것들. 뭉클거리는
것들. 어쩌자고 내 몸속에서 꺼지지 않는 TV. 내 몸
에게로 나를 송출하는 TV. 난지도 TV. 검고 불룩한
달 속의 물. 물속의 몸. 열 수 없는 우물. 끌 수 없는
창.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들. 퍼덕거리는 것들
3
내 몸속엔 20년 전 죽었다는, 썩지 않는 풍문의 아버
지가 하나. 녹슨 삽 하나. 녹슨 눈물 한 방울. 고철로
구겨진 발 둘. 뼈와 쇠숟가락. 모래로 채워진 산양의
눈 둘. 깨진 거울. 비닐봉지. 지는 별. 지는 봄. 지는
봄의 등에 걸린 지는 해. 수평선을 넘지 못하는 해
속의 물. 돌밭. 한밤의 검고 불룩한 TV. TV에 병렬
케이블로 연결된 무덤이 둘. 또 둘
누나, 다섯 살은 완벽한 나이입니다. 나를 좀 보아
요. 그리운 나를. 다섯 살에서 다섯 살까지 늙어버린
나를 좀 보아요. 기분 나쁜 기침소리가 내게서 울려
퍼지고 있어요. 세상은 아파트 13층 베란다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커다란 아버지가 나를 거꾸로 들고 서
있어요. 다섯 살이 하는 실수는 언제나 세상처럼 커요.
그곳은 허공입니다. 나는 떠 있어요. 새는 공중에서
멈출 수 있나요? 그곳에서 전부를 보았습니다.
흑흑흑, 흑색의 아버지는 가장 고요한 침대가 되었
습니다. 나는 매일같이 아버지의 침상에서 기도를 드
린답니다. 매일같이, 매일같이, 그것은 참으로 고독
하고 열정적인 리듬입니다. 눈을 감는 것이 정녕 휴
식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입술만으로 한
달째 떨고 있어요. 아버지의 소원은 죽는 것입니다.
한 달째 그렇게 나를 꼬시고 있어요. 나는 외면하고
있어요. 아직 나의 기도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떨림은 분명히 음악이에요. 누나, 그렇게 믿어요.
……. 나는 겁이 나니 동생들처럼 과일 바구니 속에
넣어줘요. 강물에 띄워줘요. 복숭아 냄새, 사과 냄새
를 낼게요. 나는 검은 포도즙 한 방울 흘릴 수 있어
요. 나는 다섯 살. 아주 먼 나라로 가서 훌륭한 젊은
이가 되어요. 누나는 더 아름다워져요.
과자의 집, 술의 집, 자매의 집, 노인의 집, 사랑의
집은 비슷한 모양으로 지어져서 나는 우편물을 잘못
배달했을지도 모르는데 …… 아무렇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얘들아, 갈까마귀들아, 나는 내 동생을 어디에
떨어뜨렸니? …/… 그래요. 나의 심부름꾼 누나, 언
제나 이곳은, 다시 이곳은 아니었어요. 그뿐입니다.
그리고 실수는 언제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요.
그뿐입니다. 언제나 그뿐이에요. 그뿐. 누나를 사랑
해요. 오, 그리운 나의 누나,
헉, 우리들의 어머니는 미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가 아버지를 미치도록 사랑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
다. 그건 정녕 미칠 만한 일이었습니다. 다섯 살에서
다섯 살까지, 3월이 오면 뜨거운 눈사람처럼 끝까지
녹아버릴 작정입니다. 해마다 3월이 오면 나는 결심
하고 또, 또 결심해요. 나의 3월은 참담해요. 그러나
4월보다는 조금 낫고 5월보다는 훨씬 나아요. 5월의
식물들을 좀 보아요. 그들의 사생활은 깊고 이토록
어지러운 뿌리를 가져요. 초록은 은밀해요. 동물들은
훨씬 공공연하답니다. 그들은 술집에서 떠들어요.
누나, 우리들의 편지는 모두 불태워버립시다. 불과
연기는 언제나 밤을 아름답게 해요. 낙타처럼, 낙타
처럼, 다시 낙타처럼 누나를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
나의 슬픔을, 천천히 떠나는 슬픔을 우리 멀리 떨어
져서 함께 장식하기로 합시다. 별과 별이 떨어져 있
듯이. 누나, 아버지는 영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해요.
그것은 사실이요 나의 작은 진실입니다. 나는 우리
누나를 위해 조금만 더 허공에 매달려 반짝이리니.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가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 처럼.
문장의 시배달, 좋아서 타이핑.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촉은 감지했지.
타오르는 촛불 아래서 나는 약혼자에게 편지를 쓰다말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카프카가 되었습니다
쭉정이 같은 모습으로 늙어갔을 사내 그러나 그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재능 있고 병들고 고단한 사내입니다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면 마음에 작고 따듯한 구멍이 생겨
톱 연주를 듣는 밤은 나의 초라한 모양이 싫지가 않습니다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작년 가을에는 꿈속에서 일곱명의 남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경찰에 쫓기는 몸이지만 사랑하는 약혼자와 노모 때문
에 자수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꿈을 자주 꿉니다
사람들에게 변신을 내가 썼다고 말했습니다
안개와 어둠뿐인 성 주 변을 맴돌며 오늘도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
(누가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왜 아무도 나를 이곳에서 끌어내지 못합
니까)
어머니는 민들레 잎을 먹으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라 말하지만
외할머니도 위암으로 죽었고 어머니도 위암으로 죽어가고 나 역시 배를
움켜쥐고 죽게 될 것입니다
약혼자는 건강한 여성이어서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겠지요
사랑하는 나의 피앙세, 그녀는 꿈에도 내가 카프카라는 사실을 모
르겠지만
그녀와 내가 백발이 되도록 함께 심판을 받을 수만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내가 그녀의 여덟 번째 약혼자라는 사실도 내가 그녀의 마지막 남
자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적인 충고도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오래도록 숨을 참고 있으면 마음에 작은 구멍이 닫히고
나는 카프카도 그 어떤 누구도 아닌, 죽어가는 노모와 단 둘 뿐인
텅 빈 박제에 불과하지만
삶이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뻔뻔하게도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그녀를 사랑해왔고
두 번 다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다시 무덤 속에서도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사슴처럼 뛰어다니는 그녀의 활기찬 육체는 어떻습니까
가죽을 벗겨서라도 그것을 가지겠습니다
독자들이여
이 모든 집착과 거짓을 누가 멈출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밤은 그 어느 누구도 욕할 수 없어 나는 밟아도 꿈틀거리고
끊어져도 꿈틀거리고 죽어서도 꿈틀거리는 위대한 사내가 되어
변신을 내가 썼다고 말했습니다
성주변을 맴돌며 언제까지라도 심판을 기다리겠다고……
누가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때가 되면 모든 안개와 어둠이 걷힐
거라고 어머니는 말하지만
외할머니도 민들레 잎을 먹으며 죽어갔고 어머니도 민들레 잎을
먹으며 죽어가고 나 역시 민들레 잎에 몸서리치며 죽게 될 것입니다
약혼자는 겁이 많은 여성이어서 내가 보낸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두려움에 떨고 있겠지요
참었던 숨을 길게 내쉬면 마음에 작은 구멍이 열리고
톱연주를 듣는 밤은 어둡고 추한 나의 모습이 싫지가 않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어느 누구도 탄식이나 비난쯤으로 폄하하지 않기를,
기막힌 아이러니로 내게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오모함에 대한 나의 소회를.
신은 빛을 잃은 이 눈을,
꿈들의 도서관에서 여명이 그 열정에 굴복해
건네는 분별없는 구절들밖에 읽을 수 없는 이 눈을
책의 도시의 주인으로 만드셨네.
낮은 헛되이 무한한 책들을
두 눈 가득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스러져간
필사본들처럼 읽기 힘든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한 왕이
샘과 정원 사이에서 갈증과 배고픔으로 죽었지.
나는 이 높고 깊은 눈먼 도서관의
구석구석을 정처 없이 떠도네.
벽들은 백과사전, 지도, 동양과
서양, 세기, 왕조,
상징, 우주와 우주기원론을
건네지만 모두 부질없다네.
도서관을 낙원으로 꿈꾸던 나는
그림자에 싸여 천천히,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텅 빈 어스름을 탐사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정확하게 명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것들을 주재하네.
다른 누군가가 안개 자욱한 어느 오후에
이미 많은 책과 어둠을 건네받았네.
느릿한 복도를 배회할 때
나는 늘 성스러운 막연한 두려움으로
똑같은 날들에 똑같은 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타자임을 느끼네.
여럿인 나와 유일한 하나의 그림자,
둘 중에서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어차피 저주의 말이 쪼개질 수 없는 하나라면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무슨 상관이랴?
내가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소중한 세상이
일그러져 꿈과 망각을 닮은 창백하고
막연한 재로 사위어가는 것을 바라보네.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로를 두려워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페키니아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콘스탄티노스카바피***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거인
*** 1863~1933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그리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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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를 붙여 보자면
모험을 떠나는 모든 오디세우스들에게
시간이 또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년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나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서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경이에 지친 율리시즈는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게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초록의 영원인 그 이타케.
예술은 또한, 나고 드는
끊임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강물처럼, 본인이자 타인인
유전하는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것.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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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
가난한 시인의 사랑노래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백석 시집을 구입했을때 이미 나는 이 시를 알고 있었다.
시를 읽고 상상을 해본다.
겨울 , 눈이 푹푹 나리는 밤, 어느 작은 선술집
나무창살로 된 미닫이 유리문 옆에 작은 테이블이 있고 그곳에 한 남자가 앉아있다.
소주 한병과 반쯤 채워진 소주잔을 앞에두고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떠올리며 시를 읊조린다
나는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한다,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눈이 푹푹 나리는 겨울밤.
내가 아는 한국시 중 최고의 사랑노래가 아닐까 싶다.
오, 사랑.
푹푹 나리는 눈과 흰 당나귀는 백석이라는 이름과 참 잘어울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과 나타샤와 흰 당나귀
하나의 전쟁이 끝난 뒤엔
누군가가 청소를 해야 해.
대충대충 하는 청소도
저절로 되진 않거든.
시체로 가득 찬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가의 잔해들을
밀어내야 해.
비틀 비틀 걸어가야만 해.
진흙과 재
소파의 스프링
이 빠진 유리그릇, 그리고
피에 젖은 헝겊 속으로.
벽을 받칠
통나무를 끌고 가고
창에 유리를 끼우고
돌쩌귀에 문을 달아야 해.
이젠 사진을 잘 받지도 않고
세월도 많이 흘러가야 해.
모든 카메라는 이미
다른 전쟁터로 떠나버렸어.
다리는 다시 세워져야 하고
역도 다시 지어야 해.
헤어진 소맷자락 사이로
팔을 걷어붙이고서.
손에 빗자루를 든 채 한 사람이
이전에 어떠했었나를 회상하면,
다른 사람은 날아가지 않은
머리를 끄덕이며 듣겠지.
그러나 어느새 이들 주위로
그것을 지루하게 여길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하네.
어떤 이는 아직도 가끔
떨기나무 아래서
퀘퀘묵어 녹슨 논쟁을 파내서는
쓰레기 더미로 가져가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이들은
이 자리를 내 줘야 해.
아는 것이 적고
적은 것보다 더 적고
결국엔 아무것도 모르는 이에게.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풀밭엔
누군가가 이삭을 입에 문 채
무심히 구름을 바라보아야 해.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 중, 끝과 시작
시를 읽으며 이라크 전쟁을 떠올렸어.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구분이 안가던 그 곳.
자신의 혹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선이라 외치는 이가, 무서운 절대 악.
문득 스치는 생각 하나,
모두 다 한통속 짜고치는 놀음판이라면?
석유던, 테러던, 핵이던.
죽어가던 평범한 사람들.
주인과 객이 제대로 바뀌어버린
그곳, 그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