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4 16:19

이윽고 또 하나의 느낌이 서서히 나의 마음을 잠식해 왔고, 그것은 정말 끔찍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꼭>들어맞는 시간과 장소가 존재한다는 인식. 최악의 슬픔이 스러지고 사라진 과거와도 타협할 수 있게 된 이래, 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인간 위치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남은 여생을 기꺼이 보낼 결심을 하고, 내게 잠재된 가능성을 완전히 발휘하게 되는 곳은 이 우주의 어디, 그리고 <언제>일까? 내 과거는 죽었지만, 혹시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에서, 더 좋은 시절이, 앞으로 그 세계의 역사에 기록될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나의 황금 시대는 이곳이 아니라 하나 앞의 세계에 가로누워 있고, 또 이곳에서 내가 암흑 시대와 고투하고 있을 때, 단 한장의 티켓, 단 한 장의 비자, 단 한 장의 일기장 너머에 나 자신의 르네상스가 기다리지 않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내가 경험한 두 번째 절망이었다. 나는 <백조의 나라>에 오기 전까지는 그 대답을 모르고 있었다. 엘리너, 왜 당신을 사랑하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그것은 곧 나의 대답이 되었다. 비가 내린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로저 젤라즈니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의 단편 폭풍의 이 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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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4 15:49


무단황단 하는 사람은 어디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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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5 14:54

태국의 빠이 커피인러브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까페. 카페인중독자들을 대거 소환하려는 의도를 가진 주인장의 네이밍 센스. 스쿠터를 타고 부뚜막군과 천천히 동네 마실을 다니다가 발견했다. 


밖에서 봤을때 꽤 예쁘게 꾸며놨다. 손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끔. 커피맛은 뭐 그저그랬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탁트인 풍경이었다. 
 

구름 그림자가 산에 걸쳐져 있는 모습, 산에 비춰진 그림자의 움직임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구름은 흘러서 어디까지 갈 수 있으려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가게 1층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 했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고양이 두마리가 누워 있었다.  얼핏 보고 난 얘네 둘이 죽은 줄 알았다.
사진을 보면 정말 그렇지 않은가?



 부뚜막군에게 쟤네 죽었나봐.. 라고 말을 했더니 부뚜막군왈 여긴 까페고 죽은 고양이라면 저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꺼라고 했다. 쟤들 낮잠 자고 있는 거 아닐까? 라고 말하던 부뚜막군.



부뚜막군의 말이 맞았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한마리가 더 있었다. 셋이서 그렇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해서 난 아래층으로 재빨리 내려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계단위에 있는 고양이의 사진을 찍었다. 자다가 놀란 얼굴이다. 
넌 누규? 라고 하는 얼굴 ㅋㅋ



녀석 점점 눈이 감긴다. 눈을 뜨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그러기엔 잠이 몰려 왔나보다.




녀석 경계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난 점심먹고 그냥 졸릴뿐이다옹. 꼭 사진 찍어야 겠냐옹? 이라고 말을 하는 듯한 고양이의 모습 ㅋㅋ



고양이 낮잠자는거 처음봄? 귀찮으니 썩 꺼져 라고 하는 듯한 사진. ㅋㅋㅋ 왼쪽 앞발은 주먹을 쥐고 있는 것만 같다. 느무 귀엽다.



녀석은 도망가기엔 너무 졸렸을까? 뒤에 고양이친구들은 여전히 자고 있다.



이내 곧 잠이 들었다. 사진이 참 예쁘게 나왔다. 고양이 발이 느무느무 귀엽다.



뒤에 있는 녀석들은 세상 모르는듯 여전히 시체놀이 중이다.




뭐.. 니가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우리는 잠이나 잘련다. 귀여운 아가고양이 세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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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6:26

블로그 유입경로에 배낭여행관련 단어가 많아졌다. 인도는 이맘 때 날씨가 좋다는데 떠나는 자가 부럽다. 릭샤왈라의 애교 섞인 웃음이 생각난다. 마담, 노체인지. 작년 몬순직전 4월의 델리날씨가 그리워졌다. 더워 죽겠다고 땀을 뻘뻘흘리며 걷던 48도의 뉴델리의 기차역, 그 날씨가 그리워질줄이야. 인크레더블인디아.
조지오웰의 1984를 읽는데 좋다좋다좋다좋다. 읽어야할 책은 많다, 앞으로 재미없는 책은 굳이 꾸역꾸역 쳐 읽지 않아야겠다. 시간은 무한하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책읽기는 교훈이 아닌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이 스친다. 꼬꼬마 시절부터 이어져온 편식.
어그부츠가 왔다. 발을 부츠안으로 넣으면 보송보송한 털들이 기분 좋게 발을 감싼다. 높은 굽의 신발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아무래도 늙었나보다. 힐에 맞춰 줄인 청바지들을 다시 또 줄일까 고민이다. 호빗족의 슬픔.
신선놀음이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한편으론 대단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빈대처럼 달라 붙었던가? 좀 더 진지하게 먹고 사는일을 걱정해야겠다. 사주쟁이 말처럼 난 인복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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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00:39

우리가 한 작가의 초기 발전 과정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서는 후일 그를 지배하게 되는 이런저런 동기들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적 제재들은 그가 어떤시대에 살았는가로 결정된다. 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소란스럽고 혁명적인 시대의 경우 이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뭔가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자기 특유의 어떤 정서적 태도를 획득해 놓고 있고 그렇게 획득된 태도로부터 아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기질을 길들이고 어떤 미숙한 단계나 괴팍한 기분에 매여 있지 않도록 자기를 훈련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의 할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초기 영향들로부터 아주 벗어난다는 것은 글을 써야겠다는 충동 자체를 죽이는 일이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요구를 제외한다면, 나는 작가들이 글을 쓰게 되는 데는(산문 작가의 경우) 네가지 큰 동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동기들은 작가에 따라 그 각각의 정도가 다르고, 동일 작가의 경우에도 그가 사는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각개 동기의 비중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 네가지 동기란 이런 것이다.

1)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도 강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작가는 이 특징적 동기를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법률가, 군인, 성공한 사업가-말하자면 인류의 꼭대기 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한다.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적이지는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는 소수의 재능 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고집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저널리스트들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 중심주의를 갖고 있다. 돈에 대한 관심은 덜 할지도 모르지만.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이런 미학적 동기는 산문 작가들의 경우엔 대체로 미약한 편이지만 그러나 팸플릿 저자나 교과서 집필자까지도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어휘와 문구들을 갖고 있고, 이것들은 공리적 이유를 떠나 그를 매혹한다. 어떤 활자체를 쓰고 책의 여백은 어떤 크기로 할까 등의 고려도 그런 것이다. 철도 안내서의 수준을 넘는 책이라면, 어떤 책도 이 같은 미학적 관심을 아주 벗어날 수 없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이 여러가지 충동들이 어떻게 서로 싸우고, 사람과 시대에 따라 그 각각의 충동이 갖는 무게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성질상 나는 (여기서 <성질>이라 함은 처음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가 도달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동기들 가운데 1,2,3번 동기가 네번째 것을 족히 압도했을 그런 사람이다. 평화 시대였다면 나는 화려한 책 혹은 단순한 묘사 위주의 책을 썼을 것이 틀림없고 나의 정치적 충성이 어느 쪽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았을 것이다.


-중략-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게으르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동기의 밑바닥에는 어떤 미스터리 하나가 놓여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마치 길고 고통스런 투병 과정처럼 끔찍하고 피곤한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마귀에 씌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피곤한 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마귀는 어린 아기가 시선을 끌기 위해 소리를 내지를 때의 그 본능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개성을 끊임없이 지워 없애려 노력하지 않고서는 어떤 읽을만한 책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도 같다. 내 경우 어떤 동기가 가장 강하게 작용했는지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그 여러 동기들 가운데 어느 것이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나는 안다. 내가 쓴 책들을 회고컨데,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었을 때일수록 나는 어김없이 생명력 없는 책들을 썼고 분홍색의 화려한 단락과 의미 없는 문장과 수식형용사들 속으로 속아넘어갔으며 그래서 대체로 허튼소리들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민음사 동물농장,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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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
2009/12/08 14:42

밤에 흠뻑 잠겨. 이따금 골똘히 생각하기 위하여 고개를 떨구듯 그렇게 흠뻑 밤에 잠겨 있음. 사방에는 사람들이 잠자고 있다. 그들이 집 안에서, 탄탄한 침대 속에서, 탄탄한 지붕 아래서, 요 위에서 몸을 쭉 뻗치거나 오그린 채, 홑청 속에서, 이불 밑에서 잠자고 있다는 조그만 연극 놀음, 순진무구한 자기기만. 사실은 그들이 언젠가 그때처럼 그리고 후일 황야에서처럼 함께 있는 것이다, 벌판의 막사, 헤아릴 수 없는 수효의사람들, 하나의 큰 무리, 한 민족이 차가운 하늘 밑 차가운 땅 위에 내던져져 있는 것이다, 이전에 서 있었던 곳에 이마는 팔에 박고 얼굴은 땅바닥을 향한 채 조용히 숨쉬며. 그런데 네가 깨어 있구나, 파수꾼이구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찾자고 곁의 섶나무더미에서 꺼낸 불타고 있는 장작을 휘두르는구나. 왜 너는 깨어 있는가? 한 사람은 깨어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사람은 있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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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
2009/12/07 01:42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 라는 속담을 갑자기 주워 들었는데

할아버지 -> 아버지 -> 본인

일제시대부터 거슬러 내려온다 가정하고
지금 부자중에 자수성가한 사람을 제외하면
그들은 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추측하는데 별로 어렵지 않음.



다같이 잘먹고 잘 살자라는 떡밥을 던졌을 때 낚일 사람은?
1. 잘사는 사람
2. 그냥저냥 사는 사람
3. 못사는 사람

3번이 낚일 확률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재수없는 경우
일제시대에는 바르게 살았고 그러다가 다같이 잘먹고 잘살자라는 떡밥에 낚여 인생 조진, 
아니 삼대가 조진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침.

결국 지배층은 피지배층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거지. 
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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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
2009/12/07 00:39


태국의 빠이. 빠이찬이라는 이름의 게스트 하우스
게으름 피우기 좋아서 2주간 머물렀다
이곳에서 한 일이라고는 해먹에 누워서 책읽다가 수영하다가 밥먹고 다시 해먹에 누웠다가, 뭐 그정도



해먹 그물 사이로 며칠동안 내 눈앞에 왔다갔다 하던 고양이 녀석 발견
머무르는 내내 저녀석 관찰을 했다 해먹에 누워서 달리 할일이 없었기 때문에




요녀석.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하는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집고양이는 아닌듯 했다.
새끼 야생고양이 정도랄까 ㅋ




사진찍는 나를 쳐다본다 너 지금 뭘찍는거임? 이라고 하는 걸까
너무 귀여워서 계속 같이 놀아달라는 눈길을 보냈지만, 녀석은 못알아 들었다 아니 나랑 놀고 싶지 않았나보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옆으로 슬쩍 도망가는 녀석, 털이 쭈뼛쭈뼛 서있는 것만 같다 ㅋㅋ




그러더니 저 나무 밑으로 들어가 여전히 다가오는 나를 응시하고 있다. 너 왜 일로 오는거임? 이란 표정 ㅋㅋ


내표정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올려본다. 녀석과의 인증샷.
저녀석 또한 카메라를 보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다. ㅋㅋ



같이 놀자며 녀석에게로 접근했다. 헌데 경계의 눈빛. 근데 생각해보면 녀석의 표정은 언제나 그랬다 ㅋㅋ



꼬리를 만지자 녀석의 눈이 커졌다. 너 뭐야 임마 ㅅㅂ 이라고 하는 듯한 표정 ㅋㅋ



나의 갖은 구애ㅋ 에도 녀석은 넘어오지 않고 걍 가버렸다.
며칠간 운동화를 신은 그녀석은 같은 위치에 계속 나타났는데, 그이유를 알았다.
처음엔 내게 먹을 걸 달라고 하기 위해 나타나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녀석의 목표는 바로.


이 새였다 새를 잡아 먹기 위해 였을까? 며칠동안 계속 선베드 아래에서 계속 대기 중인 그녀석을 보았다. ㅋㅋ
저 새 역시 며칠동안 계속 저 화분위에 앉아 있었는데,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자세히 보면 입에 먹이를 물고 있다. 




새의 시선은 먹이를 물어다 줄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두개의 원두막 기둥 중 왼쪽 기둥에 새의 둥지가 있었고 그안에는 새끼들이 있었다. 




카메라가 똑딱이라 어쩔수 없었다ㅋ 새끼가 입을 벌리고 있다.



처음엔 한마리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4마리가 더 되는 듯 했다.
새끼들은 입을 저렇게 벌리고 계속 울었다.


새의 뒷태가 보인다. 녀석은 쉬지않고 계속 먹이를 물어다 나르고 새끼들을 품고 그랬다.
카메라가 똑딱이라 에러 ㅋ
자세히 보려고 나무구멍으로 가까이 갔는데 경계의 소리를 내는 듯 해서 나는 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새는 2마리였던 것 같다. 한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나르면 다른 한마리가 그 옆 나무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운동화신은 고양이가 나타나면 보초서던 새가 입에서 소리를 내곤 했었다.
내가 둥지로 다가 갔을때도 고양이가 나타났을 때처럼 소리를 냈었다. ㅎㅎ
머물렀던 2주간, 새와 고양이와 내가 뭐 그러고 놀았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 즈음에는
더이상 오두막에서 새끼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엄마아빠새들의 모습도 볼수 없었다



참 운동화 신은 고양이가 노리던 또다른 녀석.

우리 방갈로 앞의 나무이다. 난 처음에 고양이가 나를 찾아온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착각이었다. ㅋㅋ
녀석의 시선은 나무를 향해있었다.


자세히 보면 이구아나(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음;)가 있다.





과연 하얀 운동화의 그 녀석은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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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
2009/12/03 21:51
한가닥 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어둠 속
삶과 죽음 그 경계의 끝에 매달려졌다.
언제든지 죽음으로 내밀리는 그 순간속에서
공포에 휩싸여 혼자 울부짖던 그

죽음으로 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절벽의 끝에서 애타게 기다렸지만
결국 그는
오렌지빛 뿌리며 흩어졌다

파병찬반 따위는
그에게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이야기
절벽위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2004.06.24 15:52
Posted by 어흥:)
2009/12/02 19:45





여행사진.


라오스 방비엥 레드클리프, 붉은 절벽
이름이 맞나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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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